검색

광고
광고
[이동석 여행명상록] 매화의 향기를 찾아서
이동석 칼럼니스트   |   2024-03-11
▲ 이동석 자유여행가, 경영학 박사     © 이동석 칼럼니스트

[이동석의 여행명상록] 매화의 향기를 찾아서

1 매화(梅花)가 필 무렵

바야흐로 봄기운이 싹트는 매화가 필 무렵이다. 매화는 예로부터 지조(志操)와 절개(節槪)의 상징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 그 화사한 모습과 향기를 담으려 멀리 남녁으로 내려갔다. 

 

순천역에 내려 곧장 선암사행 버스를 탔다. 1시간 후쯤, 선암사 주차장에 내려 승선교(昇仙橋)와 강선루(降仙樓)로 포장된 그림같은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니 너무나 자연스런 절의 자태가 나타났다.

 

선암사는 넓은 어머님의 품처럼 푸근한 가람 배치에 탄복하고 있으려니 노스님 한 분이 다가온다. 

 

▲ 유장한 섬진강     © 이동석 칼럼니스트

 

금년에는 궂은 날씨 탓인지 매화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면서 시간있으면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하시길래, 원통전 뒷편에 있는 스님의 선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은근히 쏘는듯한 맛이 일품인 황차를 마시면서 업보의 세계에서는 스스로 손해보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문득 존 롤스 (1921 ~ 2002)가 주장한 무지의 베일 (Veil of ignorance)에 의한 정의론이 떠오른다.

 

실현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합의한 기준이 공동선이라면, 선천적, 우연적 행운이 가져오는 결과는 가능한한 사회에 나누어 주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는가 상상해본다.

 

▲ 선암사 각황전 담옆에 피어나기 시작한 홍매화     © 이동석 칼럼니스트

 

스님 선방에서 나오니 문밖에 있는 백매화는 역시 아직 개화되지 않았지만, 건너편 각황전 담옆의 홍매화는 이제 갓 피어나고 있었다. 웃으시며 내미는 스님의 명함엔 태고총림(太古叢林) 조계산선암사(曺溪山仙巖寺) 선원장(禪院長)이라 적혀 있었다.

 

2 지리산(智異山)

 

사성암(四聖庵)

 

▲ 사성암이 있는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원경     © 이동석 칼럼니스트

 

간간히 비가 뿌리는 가운데, 구례 사성암(四聖庵)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환상적이었다. 짙은 비구름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저 드넖은 산역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곤 하였다. 태백산맥, 토지를 위시한 문학작품뿐 아니라 빨치산, 동학 등 시대적 활동의 무대이기도 했던 지리산은 우리 민족 역사의 속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화엄사(華嚴寺)에 들렀다. 약 30년전 가족들과 와본 이래 다시 방문한 셈이다. 빛날 화(華), 엄할 엄(嚴), 문자 그대로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이리라. 

 

▲ 화엄사 본당 전경. 왼쪽 각황전 오른편에 홍매화 나무가 보인다     © 이동석 칼럼니스트

 

백제 성왕때 연기존자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화엄사는 조계종 19교구의 본사답게 정교한 가람 배치와 함께 국보인 각황전을 비롯, 석탑, 석등 등 유난히 문화재가 많은 편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각황전 옆에 있는 홍매화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이곳 홍매화 역시 아쉽게도 꽃봉우리만 맺혀 있을 뿐, 개화하기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연곡사(燕谷寺)

다음으로 피밭이 많다 해서 부쳐진 피아골 중턱에 있는 연곡사(燕谷寺)에 올랐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도 등장하는 이 절은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소박한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본당 뒷편에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스님의 사리탑 2개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 과연 그 장식과 조각이 아마추어인 내가 보기에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어 한동안 거기에 머물렀다.

 

▲ 피아골 연곡사의 백매화와 순국위령비     © 이동석 칼럼니스트

 

이윽고 입구에 세워진 피아골순국위령비에 정유재란, 한일합방, 6.25전쟁 등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시련의 세월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는 글을 보면서 새삼 가슴아픈 지난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지만, 마침 수줍게 피어나고 있는 매화에 다소 위안을 삼고 절을 나섰다.

 

3 섬진강(蟾津江)

피아골에서 내려온 비개인 오후, 섬진강을 따라 계속 걷고 있다. 가끔씩 나타나는 자동차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즈녁한 강변길이다. 얼마 가지 않아 하동군 경계에 들어섰다.

 

▲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섬진강 강변길     © 이동석 칼럼니스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 에서 인용된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라고 써있는 팻말이 보인다.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배낭의 김밥을 꺼내 먹으며 너무나 여유있게 흐르고 있는 강물을 바라본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던가? 세상에 가장 좋은 미덕은 물과 같을 것이라는 노자(老子)의 말씀이 생각난다. 모든 일은 순리(順理)에 따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탐욕(greed), 시기(envy), 증오(wrath), 교만(pride) 등 기독교의 7대 죄악이 우리 인간 본성을 여전히 지배하는 한 그 이치에 따르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완전함을 이용하여 맹위를 떨치는 여론이나 정서에 휘둘리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벗어날 이성적인 시민에의 길은 요원하다는 자괴감이 든다. 특히 정략적 편가르기, 남 탓, 멍석말이에 중독된 사회에서 우리들이 바라는 정의는 결코 구현될 수 없지 않겠는가.

아! 이 일을 어찌할꼬?

 

▲ 저녁무렵 화개천변 화개장터의 그림같은 전경     © 이동석 칼럼니스트

 

4 선비 정신

광양 매화마을에 갔었다. 하동 화개장터에서 출발하여 쌍계사(雙磎寺)에 들렀다가 섬진강변과 백운산자락에 펼쳐진 매화를 감상했다. 비교적 맑은 날씨와 따뜻해진 기온 덕분에 이곳 매화는 활짝 만개해 있었고 일부는 이미 지고 있었다.

 

▲ 광양 다압면 백운산자락의 매화마을     © 이동석 칼럼니스트
▲ 하늘을 향해 만개한 매화마을 홍매화     © 이동석 칼럼니스트

 

매화축제가 이틀후에 열릴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분주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홍매화, 백매화, 분홍매화 등 흐드러진 매화의 향기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여정의 말미에 광양시 봉강면 서석마을에 있는 매천(梅泉) 황현 (黃玹, 1855 ~ 1910)의 생가와 묘소에 갔었다. 조선말 탁월한 시인이자 역사가였던 그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고도 부패가 만연한 현실정치에 실망하여 평생 이곳 백운산지역에서 야인(野人)으로 살다간 지식인이었다.

 

▲ 매천역사공원에 활짝 핀 매화. 그 뒷편에 매천의 묘소가 있다     © 이동석 칼럼니스트

 

특히 구한말 격동기였던 1864년 부터 1910년까지의 40여년간, 당시의 정치사회상과 외세의 침탈, 조정의 무능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오하기문(梧下記聞)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저술을 남기고 한일합방후 자결하였다. 

 

문(文), 사(史), 절(節)을 겸비한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서 매천역사공원에 있는 묘소앞 추모비문에는 그의 절명시(絶命詩)가 새겨져 있어 주변에 만개한 매화와 겹쳐져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게오르크 헤겔 (1770 ~ 1831)은 "역사는 자유의식(自由意識)의 진보를 위한 여정" 이라 하였다. 즉, 자유가 자율적 이성에 의한 보편적 의지를 의미한다면, 이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다수를 빙자하여 개인을 강제할 수 없음이 역사적 순리이다. 그 의지의 총화인 국가의 주권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근거없는 여론이나 정서는 나중에 틀릴 수 있음을 보아왔을 때, 다수결로 처리할 수 없는 내재적 한계는 있는 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매천이 느꼈을 실존적 고뇌와 절망에 가슴이 아리다. 이성과 상식에 목마른 이 매화의 계절에 조선 망국의 시대를 살다간 한 선비를 새삼 생각해 본다.

 

▲ 1910. 9. 10 순국한 매천이 남긴 절명시 비문     © 이동석 칼럼니스트

 

 

뒤로가기 홈으로
광고

인기뉴스

광고
광고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경기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