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광고
광고
[정재학 칼럼] 왜 최악의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가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의 분석, '노예로 가는 길’
정재학 칼럼니스트   |   2024-04-18
▲ 정재학 시인, 칼럼니스트     

[정재학 칼럼] 왜 최악의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가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의 분석, '노예로 가는 길’

 

필자는 현 대한민국의 저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혁명만이 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경제와 국방 관련 방위산업이 모두 세계 일류를 달리고 있고, 문화는 최첨단의 기적을 이루고 있음에도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22대 총선이 혁명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국회는 민주당 전체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그리하여 필자는 보수의 혁명을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하이에크는 189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92년에 9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가 쓴 책 중에는 1944년에 나온 '노예가 되는 길'(The Road to Serfdom)이 특히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해방 1년 전의 일이었다.

 

 하이에크는 '시장(市場)'이란 완전한 이성을 갖춘 합리적 인간들이 완벽한 계획을 갖고 만나는 장소가 아니고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들이 제한된 정보를 갖고 만나는 장소라고 하였다. 이에 하이에크는 시장 경제와 같은 자생적 질서를 계획경제와 같은 인공적 질서로 전환시키려는 모든 정치적 기도(사회주의, 합리주의, 구성주의 등)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대한민국 사회도 제한된 정보를 가진 불완전한 인간들이 나타난 지 오래다. 제한된 사상과 이념에 기울어진 운동권들과 주사파 세력들의 등장은 대한민국 파괴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미 대법원판결만 남은 범죄자가 당을 만들고, 대장동 사건부터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까지 무려 10여 가지에 이르는 범죄 피의자가 야당 대표가 되었고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사회는 합리(合理)를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하이에크는 그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뉜 바 있다. 한 계층은 높은 교육을 받은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높은 수준의 교양이 있기에 생각과 취향이 다르고 어떤 특정한 가치관에 끌려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한 계층은 교양과 지식수준이 낮은 하층민들이다. 그들은 원시적이고 서민적인 본능을 가진 대중으로서 사회 저변을 이루는 다수(多數)라고 하이에크는 말하였다. 

 

대중이 꼭 무식한 것은 아니지만, 달콤한 말과 선동에 쉽게 휩쓸리는 계층이란 점은 공통적이다. 특히 전라도라는 풍습과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합리를 버린 저(低)수준 계층의 표본이다. 이들은 대부분 사물에 대한 옳고 바름을 가리는 논리성과 폭넓은 사고(思考)와 너그러움과 포용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최다 군중을 지지자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 또한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식 나라야 망하든 말든 ‘퍼주기 정책과 포퓰리즘’이 그 증거다. 문재인의 1000조 나라빚 늘리기와 이재명의 25만원 나눠주기 공약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이들 정체에 함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로 이 저(低)수준 계층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제 22대 총선도 이들 저질수준의 대중에 대한 선동이 먹힌 결과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동에 더하여 전라도를 지역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여 힘의 배경으로 삼으려 하였다. 마침내 민주당은 대한민국 영토를 ‘내 편’과 ‘저 편’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선동의 표적으로 선정된 저질그룹은 자신의 신념 체계가 취약하므로 가공(加工)이 잘된 가치관과 논리를 주입시키면, 그들의 열정과 감정을 흥분시켜서 지지기반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선전전의 원리였다. 

 

더 나아가 민주당의 주된 선거전략은 ‘증오심기’였다. 인간의 본성은 긍정적인 현실보다는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심이나 내부의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을 중심으로 뭉치기가 더 쉽게 되어 있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었다.  

 

민주당의 ‘갈라치기 전술’이 이에 속한다. 못사는 '우리'와 잘사는 '그들'을 대립시키고, 그들을 기득권으로 몰아세우며 싸움을 선동하고 있었다. 이런 선동은 대중을 한 덩어리로 묶어 진영논리를 만들어 낸다. 무조건 ‘내 편’을 만드는 진영논리는 민주당의 전략이었다.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어 투쟁심을 선동하는 것은 지지층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다.

 

정치가 이 정도가 된 것이다. 민주당 정치가 대한민국 미래를 이끈다고 생각하였을 때, 소름이 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민주당은 영부인 김건희를 선동의 무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 증오심을 선동하였고, 적개심을 선동하여 지지층을 확대 강화했다. 여기에 성당의 신부들과 수녀, 좌파 목사들과 스님들이 동참하여 신도(信徒)들에게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발전 정당화시켰다.

 

하이에크는 저질(低質) 대중의 본능적 야수성(野獸性)성을 선동하면,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의 지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간이 가진 열등감이나 파괴적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 수법이 이들 저변층에 먹혀들 만큼 저질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질은 민주당의 본성(本性)이다. 이화여대생들의 성상납을 말한 김준혁이 당선된 사례가 바로 저질 선동의 효과를 증명한 것이다. 이재명 또한 이를 지지한 글을 썼다가 지웠다. 이런 저질들이 부정선거를 거부할 까닭이 없다. 필요하다면 반역도 서슴지 않는 자들 아닌가. 선관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고, 대만과 같이 사전투표를 없애고 투표함 이동 없이 현장에서 개표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저질은 저질을 부르고, 저질은 수준 높은 양심(良心)을 적으로 간주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번 총선에서 11억 불법대출을 받은 양문석을 비롯한 저질들이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떤 저질 정책이 튀어나올 것인지, 또 어떤 저질 법안들이 쏟아져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겨레나 경향, MBC 등이 매체를 총동원하여 벌여온 계층 간의 갈등 조장, 지역분열을 노린 선동은 가짜뉴스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악의 저질(低質)선동이었다. 따라서 이들 신문과 방송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들에게는 혁명이 필요한지 우리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좌파로 기울어진 저질문화 속에서는 저질(低質)과 어울리는 사람들만이 출세한다고 하였다. 민주당 총선 승리가 이를 증명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재명과 추미애 등을 지지할 까닭이 없다. 수준 낮은 저질 하층민들이기에 그런 똑같은 저질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에서 한동훈도 대통령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를 간파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한 국힘당 지도부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배웠다는 사람들이 ‘하이에크의 경고’조차 읽지 못하였는지 한탄스럽다.

 

전라도 사람들끼리 모이면 개인의 양심은 함몰되고 집단적인 가치관에 종속된다는 점도 증명되었다. 그 집단적인 가치관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진행된 것이 바로 이번 총선이었고, 정율성 추모였으며, 5.18 헌법수록 주장이었다. 

 

또한 왜 민주당이 삼성 이재용을 비롯하여 기업인들을 그토록 괴롭혔는가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토지의 국유화, 사유재산권에 대한 제약을 주장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벌 해체와 국유화가 문재인 시대에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전체주의자들이었으며, 자유민주의 반대편에 있는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개인은 양심이 있지만 집단이 갖는 양심은 없다고 하였다. 집단주의는 인간 개인이 갖는 생명의 존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죽음에도 민주당은 북을 옹호한 것이다. 탈북자 북송 등을 미루어 볼 때 민주당이 공산집단이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온갖 가짜뉴스를 발판으로 거짓과 폭력을 무기화하고 사회 저변을 이루는 무지한 계층을 앞세워서 증오를 부추기는 한편, 민주당은 갈등과 분열과 거짓말 같은 저급한 문화를 확산시킨 적이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최악의 저질인간들이 그 사회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하이에크가 한 예언이었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974년 화폐와 경제 변동에 관한 연구로, 이데올로기적 라이벌인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더불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어 1991년에는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메달(U.S.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소련의 멸망을 지켜보았다.

 

2024. 4. 18.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외부 필진 칼럼은 본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뒤로가기 홈으로
광고

인기뉴스

광고
광고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경기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