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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발주나의 맹약
정재학 칼럼니스트   |   2024-02-26
▲ 정재학 시인, 칼럼니스트     

 발주나의 맹약 

 

징기스칸의 삶을 간추려 보면, 오직 역경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부족을 잃고, 아내를 빼앗기고, 초원을 떠돌던 징기스칸의 영광 뒤에는 쓰라린 패전의 기록도 있었다.

 

징기스칸이 성장함에 따라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 늘어나고 세력이 커지자, 위협을 느낀 옹칸과 자무카의 연합군은 징기스칸을 친다. 사방이 포위되어 흩어진 채 부하들이 죽어나갈 때 징기스칸은 부하 한 명에게 자신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게 하고 명령을 내린다.

 

"너는 저 산 위로 올라가 이 깃발을 꽂으라 !"

 

명령을 받은 부하는 포위를 뚫고 산 위로 올라가 깃발을 꽂는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난다. 사방에서 옹칸과 자무카의 연합군에 밀려 죽어나가던 징기스칸군에 이 깃발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징기스칸이 살아있음을 알고 죽기살기로 포위를 뚫고 깃발 아래로 모인다. 모두 19명이었다. 그 중에는 후일 러시아와 폴란드, 헝가리를 정벌하는 명장 수부타이도 있었다.

 

징기스칸은 살아남은 이 19명을 이끌고 발주나 호수로 간다. 그곳에서 진훍탕 물로 연명하면서 몽골통일을 향한 굳은 맹약을한다. 바로 '발주나의 맹약'이었다. 이 맹세로 징기스칸과 부하들은 하나가 되어, 마침내 몽골을 통일하고 중국을 무너뜨리는 한편 세계정복의 위업을 이룬다.

 

 필자는 위기 속에서 징기스칸을 구한 것은 '깃발의 힘'이라 생각한다. 쏟아지는 창과 칼과 화살을 뚫고 징기스칸의 깃발이 산정에 꽂혀졌을 때, 그걸 본 부하들의 눈에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었을 것이다. 깃발은 생명이었고 바로 징기스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작금의 총선 상황을 이 전투로 보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 싸우고 있는 애국우파세력들은 마치 흩어진 징기스칸군과 같다. 이제 자유애국우파 애국자들은 하나의 깃발 아래로 모여야 하는 것이다.

 

살고자 뜻이 있는 애국자들은 징기스칸의 깃발 아래 모인 징기스칸군과 발주나 호수의 맹약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익의 별들은 제자리에 들지 아니하고 흩어져 돌고있다. '발주나의 맹약'에 참여한 19명은 서로 다른 9개 부족 출신들이었다. 종교도 달랐다. 이슬람 불교 기독교, 심지어 샤머니즘을 믿는 이들도 있었다. 

 

징기스칸은 이들을 하나로 합치며 부족과 종교를 초월하는 창조적인 역량을 이루어낸다. 그리하여 거대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필자는 자유통일당과 자유민주당을 향해 하나의 깃발 아래로 모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흩어진 별들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러나 징기스칸의 고초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발주나에서 징기스칸은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통합이란 갖고 있는 모든 걸 내려놓을 때 가능해지는 법이다. 징기스칸은 혈통도 종교도 지역도 출신도 모두 내려놓는다. 그리고 통합과 단결만을 생각한다. 

 

일당(一黨)만을 고집하는 순혈주의는 고립을 자초하는 법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얻은 것은 수많은 이민자들이 갖고 온 다문화를 하나로 모은 창조적 역량에 있다.

 

자유애국우파도 통합의 창조성을 염두에 두고 하나의 깃발 아래로 모여야 한다. 너와 내가 갖고 있는 지혜와 힘을 모아, 민주를 가장한 붉은 좌익들과 싸워야 한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산정에 세운  성조기     

 

태평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이오지마 전투에서 산정에 성조기를 세우던 6명의 미군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성조기를 바라보며 승리를 환호하던, 들것에 실려가며 눈물을 흘리던 미군 부상자들을 떠올린다. 이 위대한 장면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2024.  2. 26.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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