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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14) 알람브라 궁전(La Alhambra)
김성윤 주필   |   2024-01-06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알람브라 궁전(La Alhambra)

 

론다에서 10시 52분 오찬을 시작해서 11시 24분 오찬을 마치고 구 시가지를 지나서 12시에 알람브라 궁전(La Alhambra)을 향하여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알람브라 궁전을 알함브라 궁전으로 표시하였는데 스페인어에서 “h”는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고 읽는다. 

 

이에 따라 이하에서는 알람브라 궁전으로 통일하여 쓰겠다. 알람브라 궁전은 우리나라 tvN 주말연속극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 알람브라 궁전(La Alhambra)의 아름다운 석양     © 경기데일리

 

그곳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올리브 과수원이었다. 올리브 과수원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 졌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수목원에서』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전망이 펼쳐졌다. 

 

올리브 과수원은 작은 규모가 5에서 10헥타르란다. 1헥타르가 3,025평이니 10헥타르면 30,250평이나 되는 넓은 농지다. 스페인의 올리브 과수원의 약 80%는 개인 소유이며, 나머지 20%는 정부나 기업 소유다. 과수원은 일반적으로 가족이 경작한다. 올리브는 식용 오일, 피클, 기타 올리브 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가이드 로(노)베르또는 론다에서 출발하여 라 파라다(la Prada) 휴게소까지  오는 거의 1시간 30분 동안 농업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천안 농협의 임원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 과수원의 넓이와 규모에 놀랐다. 여기에 왜 다른 작물은 안 심고 올리브 과일만 재배 하는가? 라는 질문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이유는 여기서부터 불과 1,000km 떨어진 곳에 타베르나스 사막(Tabernas Desert)이 있다. 그 영향으로 강우량이 적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올리브 재배가 가장 적합하다.

 

 이점은 이곳에 사는 농민들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다른 농작물보다 올리브 과수원이 더 수익이 많다는 점이 주로 올리브 농사를 짓게 만들었다. 비록 올리브 나무는 심어져 있지만 우리나라 산하와 너무도 닮아서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로(노)베르또는 1천 년 전 이슬람 인들이 스페인에 전수 해준 것이 많다면서 시간이 되면 그것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 알람브라 궁전의 상부 정원에서 중앙 정원으로 가고 있다,     © 경기데일리

 

이러한 내용을 듣고 토론을 하는 동안 우리를 태운 버스는 쉼 없이 달려서 오후 1시 33분 라 파라다(la Parada)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8분 휴식 후 1시 55분 알 아람브라 궁전으로 출발해서 2시 15분 경 알 아람브라 궁전을 앞에 둔 사크로몬테라는 반대편 집시들이 살았던 촌락에 도착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언덕 맞은편 언덕에 위치한 사크로몬테는 수백 년 동안 집시들이 모여 사는 독특한 공동체다. 15세기 그라나다 함락 후, 이들은 추방당하거나 노예로 팔렸지만, 사크로몬테 언덕으로 숨어든 집시들은 살아남았다. 석회암 언덕을 깎아 만든 동굴집에서 살며, 플라멩코와 독특한 예술, 수공예를 발전시켰다. 

 

▲ 집시들의 둥글집 https://www.thewildlifediaries.com › Spain     © 경기데일리

 

사크로몬테는 집시들의 자유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빈곤과 차별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사회의 주변부에 밀려나 살면서 교육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했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시달렸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다보는 그들의 생활상은 비참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사크로몬테는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집시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차별과 빈곤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알람브라 궁전에 도착하여 입장권과 여권을 대조하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시간은 2시 35분이었다. tvN 주말극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한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마법과 과학, 아날로그와 디지털, 현대와 중세, 그라나다와 서울, 공유될 수 없어 보이는 세계가 한데 섞이고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경험을 통해 사랑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한 연속극이다. 

 

특히 드라마의 배경이 된 그라나다는 시청자들이 가상현실 게임 속으로 빠져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제 그라나다는 마법의 도시가 될 겁니다.”라는 현빈의 대사처럼 알람브라 궁전은 이미 그 자체가 마법이나 다름없는 건축물이다. 지금은 그 이슬람인은 없고 그들이 만들고 가꾸어 놓은 궁전이 있고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 궁전 속 이세키아(Ishaqia) 정원부터 둘러보겠다.

 

이세키아 "정원"은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단지에 있는 정원이다. 궁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스르 왕조 시대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정원이다. 이 정원은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으로 유명하다. 특히 르네상스와 이슬람 건축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사례 중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정원은 아랍어 단어인 얀나트 알 아리프(Jannat al-Arif)로 지상낙원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상낙원(정원)은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상부 정원, 중앙 정원, 하부 정원으로 되어 있다. 상부 정원은 긴 수로와 양쪽에 있는 화단으로 구성된 긴 직사각형 공간이다. 

 

▲ 긴 수로와 양쪽에 측백나무 화단으로 구성된 긴 직사각형 공간에 수반과 분수대가 양 옆으로 있다.     © 경기데일리

 

입구에서 첫 번째 만나는 정원이다. 중앙 정원은 정원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아름답다. 정원의 중심부에는 웅장한 연못이 있다. 하부 정원은 가장 작은 정원이며 과수원과 채소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세키아 정원은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원에는 오렌지, 레몬, 호두, 석류나무와 같은 과일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이들 과수나무 외에 포플러, 사이프러스(측백) 나무를 비롯한 장미, 카네이션, 수련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꽃도 있다.

 

그중에서도 중앙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매력적인 요소를 결합한 곳이다. 분수가 있는가 하면  그늘진 회랑을 통한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 바로 앞에는 측백나무와 오렌지, 레몬 나무가 있으며 아름다운 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공기는 향기롭고 새들은 나무에서 지저귄다. 이곳이 지상낙원이 아니면 어디를 지상낙원이고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제임스 러셀 로웰은 "알람브라"라는 시를 통하여 이세키아 정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아래 시는 그 시의 한 구절이다.

 

아름다운 정원/그늘진 산책로/맑은 분수와 향기로운 꽃/어디에서나 새들이 노래하고 공기가 사랑의 속삭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곳에서 무어인은 사랑과 희망의 꿈을 꾸었습니다.

무더위와 먼지 속에서/그들은 이곳에서 안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하지만 이제 그들은 떠났고, 그들의 노래는 사라졌습니다./그들의 꽃은 시들었고/ 그들의 분수는 마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정원에 그들의 흔적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 시만 음미해 보아도 이세키아 정원의 아름다움과 평온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이 사랑과 희

망의 장소로 떠오른다. 휴식을 취하고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원을 조성한 주인들은 이제 떠났고 정원은 황폐해졌다. 그런데도 정원은 지난날의 추억과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처럼 우리 뒤에 오는 방문객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줄 것이다.

 

나스르 왕조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 단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궁전이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술탄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궁전은 3개의 주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메수아르 궁으로 공식적인 접견과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코마레스 궁으로 술탄의 거주 공간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이온 궁으로 술탄의 가족과 하렘이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이 밖에도 나스르 왕조 궁전에 대한 흥미로운 첫 번째 사실은 이 궁전은 약 250년 동안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궁전 건설에 사용된 대부분의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했다. 두 번째 흥미로운 사실은 궁전에는 수천 개의 방이 있었으며 궁전의 정원에는 약 1,000종의 식물이 있었다고 한다.

 

▲ 궁전은 아름다운 아치형 문, 정교한 타일 장식, 섬세한 석조 조각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자의 안뜰(Patio de los Leones)은 12마리의 사자가 둘러싼 분수로 유명하다.     © 경기데일리

 

궁전은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아치형 문과 창문, 정교한 타일 장식, 아름다운 정원 등이 특징이다. 특히 사자의 정원은 12마리의 사자가 둘러싼 분수와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유명하다. 알람브라 궁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레오네스 궁에 있는 사자의 중정(안뜰)이다. 

 

이곳은 술탄의 후궁들이 머물던 내밀한 공간으로 화려하고 경쾌하다. 건물은 기둥과 벽면, 천장이 기하학적 문양으로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의 하나하나는 섬세하고 정교하다. 한 가지 특징은 어떤 문양을 보아도 동물이나 사람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슬람교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양 대신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무늬를 이용하여 장식했다. 회랑식 정원의 형식은 위치, 형태, 공간의 구성, 동선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과 더불어 식물요소, 수경요소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시설물 등에 대한 사면이 열주로 둘린 회랑식 중정은 28m×16m의 규모이다. 그 가운데 대리석으로 만든 12마리의 사자가 저마다 입에서 물줄기를 뿜는다. 그리고 사자들이 받치고 있는 수반을 중심으로 네 개의 수로가 안뜰을 4등분하고 있다. 그 밖의 특징으로 무카르나스로 종유석과 같은 모양의 천장 장식이 있으며 아즈레호로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 장식이 있다. 

 

▲ 아즈레호로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 장식이 있는 궁전에 아치형 창을 통하여 밖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 경기데일리

 

다음으로 눈여겨 볼거리는 카를로스 5세의 궁전으로 알람브라 궁전 단지에 위치한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왕 카를로스 5세가 명령하여 1527년에 건설을 시작했지만, 그의 사망 이후 현재까지도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의 외관     © 경기데일리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 단지의 다른 건축물들과는 대조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궁전은 정사각형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으며, 중앙에는 원형의 안뜰이 있다.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아치형 회랑은 도리아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궁전의 내부는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지만, 일부 공간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나스르 왕조 시대의 유물과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입장권이 없어서 그 곳에는 가 볼 수가 없었다.

 

카를로스 5세는 이슬람 건축을 좋아하지 않아 알람브라 궁전에 자신의 거주 공간을 새로 짓고 싶었다. 그는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궁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지어진 건축물은 이슬람 건축과 르네상스 건축의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냈다. 궁전의 건축가는 페드로  맞추카 이었으며 궁전의 중앙 안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르네상스 안뜰 중 하나가 되었다.

 

▲ 카를로스 5세 궁전의 중앙의 원형 안뜰(현대는 에코를 이용하여 음향이 선명하여 음악회가 자주열리는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 경기데일리

 

이 같은 건축물이나 정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략히 좀 더 소개해 보겠다. 이슬람 문화는 사라센이라 불리는 아랍 민족이 발전시킨 문화로 그 기저는 이슬람교다. 그들의 문화는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아라비아 지역에서 발전했다. 아랍인들은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무어인들에게 그들의 문화를 전파했다. 무어인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800년 동안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며 이곳에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도 아래 지도에 표시된 그들이 남긴 알람브라 궁전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 한글로 표시된 알람브라 궁전의 평면 안내도     © 경기데일리

 

스페인은 기독교 국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스페인 땅에 이슬람 양식의 알람브라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전 세계로부터 모여든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은 1829년부터 1832년까지 스페인 그라나다에 머물면서 알람브라 궁전에 대한 그의 저서 "The Alhambra"를 썼다. "나는 지금 그라나다의 알람브라에 있습니다. 이 마법 같은 궁전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나는 그곳의 홀과 아케이드에서 방황하였는가 하면 그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그 맑은 분수의 물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 사자의 중정 북쪽에 있는 다라하의 중정, 이곳도 중정 가운데 수반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화단과 정원수로 꾸며진 초록의 공간으로 한결 시원스러운 분위기이다. 아름다운 분수와 측백나무가 고급스럽고 멋지게 보인다.     © 경기데일리

 

나는 과거 시대의 영혼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어 왕들의 영광과 화려함, 그들의 사랑과 전쟁, 그들의 기쁨과 슬픔이 내 주변에 있습니다.』 "알람브라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알람브라는 과거의 유물입니다. 무어인이 스페인에서 쫓겨난 후 수세기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아름다움과 위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스페인의 위대한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기념물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은 오늘 날 스페인 땅에 존재했던 이슬람의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왕조(1231~1492)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수프 1세와 모하메드 5세의 증축과 개축을 거쳐 완성됐다. 

 

이러한 이슬람 왕조를 멸망시킨 것은 1492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에 연합국에 의해서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를 완수했다. 이로써 이슬람에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기 위해 7백 년 이상 끌어오던 전쟁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화재와 그들의 영혼마저 스페인 것이 되었다.

 

이곳의 마지막 왕 보압딜은”그라나다를 잃는 것보다 알람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라며 이곳에 전쟁의 상처를 남기지 않고 물러났다고 한다.

 

제임스 러셀 로웰의 "알람브라"는 1864년 쓴 그의 저서 노을빛 여행(Fireside Travels)이라는 책의 서두에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까지 올라가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언덕의 측면을 따라 올라가며 양쪽에는 과수원과 채소밭이 있다. 정상에 도달하면 궁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웅장한 광경이다. 고풍스러운 성곽과 탑으로 둘러싸인 방대한 건물 단지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 도시(그라나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 일행이 올라가면서 보는 광경도 거의 비슷했다. 

 

▲ 알람브라 궁전 상부정원에서 내려다보는 궁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 경기데일리

 

로웰은 궁전의 건축에 대해서 "알람브라는 무어인이 스페인을 지배했던 시대에 지어졌으며 이슬람 건축의 가장 아름다운 예 중 하나다. 궁전은 붉은 벽돌과 모자이크 타일로 지어졌으며 아치형 문과 창문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정원과 분수로 가득 차 있으며 벽과 천장은 정교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다." 고 적었다.

 

▲ 살라 데 메수아르와 살라 데 라스 헤르마스는 모두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곳으로 복잡한 문양과 꾸란 문구가 새겨진 기하학적 패턴의 벽과 창문이 신비롭기만 하다     © 경기데일리

 

이어 그는 무어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무어인은 북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이다. 8세기에 스페인을 정복하여 500년 넘게 통치했다. 무어인은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큰 진보를 이룬 문화적으로 정교한 사람들이었다. 아름다운 건축물, 시, 음악을 만들었다."고 기술하였으며 로웰은 마지막으로 궁전의 황폐 상태에 대해 언급했다. "알람브라는 이제 폐허가 되었다. 한때 위대한 제국의 중심지였던 곳은 이제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유적지일 뿐이다. 

 

▲ 밀려드는 관광객을 품은 알람브라 궁전     © 경기데일리

 

하지만 궁전의 폐허는 여전히 ​​아름답고 과거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로웰의 수필은 궁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높이 평가 하지만 그 쇠퇴에 대해서도 슬퍼한 글이다. 그의 글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쇠퇴를 대조하여 씁쓸하면서도 달콤함을 주고 있다.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이라는 시인은  "알람브라"라는 시로 궁전의 아름다움과 황폐함을 묘사하고 무어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알려주고 있다.

 

알람브라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알람브라! 그 이름은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그것은 무어인의 마지막 요새,

그들의 왕관의 보석,/그들의 힘과 영광의 상징./하지만 이제는 황폐해졌습니다.

그 홀은 텅 비어 있고/그 정원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며/그 분수는 마르고 있습니다.

무어인은 어디로 갔습니까?/그들은 쫓겨났습니다./그들의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하지만 알람브라는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유물입니다./그것은 스페인의 위대한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기념물입니다."

 

이상은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이 쓴 시의 내용을 발췌하여 요약한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인은 높은 문화와 문물을 가진 민족이었다. 다양한 선진 문문을 스페인을 통하여 유럽에 전수해 주었다. 그 첫째가 천문학이다. 이슬람 학자들이 터득한 천문학 지식을 유럽으로 전파하여 르네상스 시대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둘째는 수학지식의 전파다. 이슬람 학자들은 0의 개념을 포함한 힌두-아라비아 숫자 체계를 유럽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대수학, 삼각법, 기하학 등 수학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유럽인들에게 알려 주었다. 셋째가 의학이다. 이슬람 의학은 당시 유럽보다 훨씬 발전했다. 이슬람 의학자들은 병원을 설립하고, 의학 백과사전을 편찬하였으며,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다. 이러한 의료기술을 유럽에 전수해 주었다. 넷째가 농업기술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새로운 관개 시스템을 개발하고, 다양한 작물을 도입하여 농업 생산성을 크게 향상했다. 이 새로운 농법을 유럽에 전파해 주었다. 다섯째가 건축 기술이다. 이슬람 건축은 아름다운 모스크, 궁전, 정원 등으로 유명하다. 

 

▲ 아라야네스 중정 또는 마이틀 코트는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안뜰 중 하나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긴 반사 수조를 중심으로 안뜰 양쪽에 아치형 아케이드가 있는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름다우면서도 포근하다.     © 경기데일리

 

이슬람 건축은 첨단의 건축 기술과 독특한 장식 스타일을 사용했는데 이 기술도 전파해 주었다. 여섯째가 예술과 교육이다. 이슬람 예술은 서예, 도자기, 칼리그라피(손 글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했다. 이슬람 예술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패턴과 아름다운 꽃무늬를 사용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슬람 학자들은 대학교를 설립하고, 많은 책을 저술하여, 지식을 널리 퍼뜨렸는데 이 새로운 지식을 스페인에 전해 주었고 이 지식이 다시 유럽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이슬람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윤리학, 정치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철학적 논의를 진행했다. 여기에 문학도 빠질 수 없는 분야다. 이슬람 문학은 시, 소설,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했다. 이슬람 문학은 아름다운 문체와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했다. 이처럼 이슬람 문화는 스페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문화는 스페인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계속하여 앞에서 못 다 쓴 정원 투어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의 아름다운 살라 데 메수아르((술탄이 고문들을 만나고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와 살라 데 라스 헤르마스의(술탄이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고 사적인 회의를 하는) 내부     © 경기데일리

 

다하라 중정 또는 술탄의 안뜰은 알람브라 궁전의 나스르 왕조의 중심 안뜰이다. 서울 창덕궁 북쪽 울안에 있는 후원은 조선 최대의 궁중 정원으로 자연을 이용한 정원이라면 다하라 중정은 인공 안뜰이요, 정원이다. 비원(祕苑)은 임금의 소풍과 산책에 사용되었다, 비원의 울창한 숲속 곳곳에 운치 있는 정자와 연못이 있다면, 다하라 중정은 코마레스 궁전과 두 자매의 궁전 사이에 있는 정교한 석회화와 타일 장식으로 된 인공안뜰이요, 정원이다. 안뜰의 중앙에는 분수가 있는 긴 연못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아치형 아케이드가 있다.

 

아라야네스 중정과 다하라 중정 사이에 레하의 (Patio de la Reja)안뜰은 알람브라의 또 다른 궁전의 작은 안뜰이다. 그곳은 여성전용 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이처럼 알람브라의 세 개의 안뜰은 모두 아름답고 독특하다. 무어 건축기술로. 이슬람 예술과 건축의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나사리에스 궁을 지나면 후원이자 귀족들의 처소 썼던 파르탈 정원이 나온다. 옆으로 아케이드가 연결되어 있는 귀부인의 탑(Torre de las Damas)이 있다. 아치형 빈창으로 건너편 사크로몬테 언덕과 정상이 비경이 되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번에 스페인을 여행하기 전에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스페인의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중심으로 연수가 있었기에 이곳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를 통하여 높은 이슬람 문화에 다가설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어제 보았던 세비야의 대성당, 이틀 전에 들렸던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와 꽃길 그리고 오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과 정원을 통하여 그들의 높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완벽에 가까우면서도 신비스러운 그들의 장인정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을 지상의 낙원으로 꾸미려는 그들의 발상은 나의 편협한 마음을 넓혀주었다. 

 

▲ 그라나다스(석류)의 문을 향하여 올라가는 계단에 열려 있는 탐스런 석류     © 경기데일리

 

우리는 3시 50분  알람브라 궁전의 투어를 마쳤다, 호텔로 가기 전 만찬장으로 갔다. 저녁 식사는 이베리코 되지 불고기, 이베리코 되지 순대, 야채 등이었다. 여기에 1925년부터 생산해오고 있다는 이베리코 맥주를 곁들였다. 이베리코 맥주의 맛은 약간 쓴맛이 나는 아주 감칠맛 나는 맥주였다.

 

저녁을 마치고 호텔로 온 시간이 6시 30분이었다. 대충 씻고 좀 쉬다가 스페인에 온 지 두 번째로 시내 구경을 나갔다. 지금까지의 호텔이 외곽에 있어서 밤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오늘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념일이어서 온 시내가 축제 분위기였다. 룸메이트인 김동수 감사의 제의로 시내 축제장으로 나가 보았다. 밤 8시 30분이 지났는데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 거리와 테라스에서 축제와 밤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그라나다 시민들     © 경기데일리

 

지나가는 길에 상당히 큰 지역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우리의 하나로 마트와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매대의 진열장 이었다. 우리는 평면 진열인데 이곳은 비스듬하게 3단으로 진열하여 풍요로우면서도 입체적으로 보여 상품의 값어치를 높여 준다는 점이었다. 또 다른 특징은 캐시 아가씨의 친절함이다. 

 

▲ 매대가 평면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3단으로 만들어 놓아 값지고 풍요로워 보였다.     © 경기데일리

 

김동수 감사가 이베리아 맥주를 사고 싶어 했는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캐시 아가씨에게 영어로 이베리아 맥주를 사고 싶은데 못 찾겠다고 하자 하던 일을 중단하고 매장 안으로 우리를 안내하여 이베리아 맥주를 찾아주고 설명도 해주었다. 우리 하나로 마트에서도 이 같은 친절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과 함께 더 돌아다녀 보고 싶었지만, 피곤도 하고 내일 아침 6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그라나다 공항으로 가야 하므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 매대가 평면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3단으로 만들어 놓아 값지고 풍요로워 보였다.     © 경기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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