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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10회) 메스키타 꽃 길, 사랑이 흐르는 거리, 유대인 거리
김성윤 주필   |   2023-12-07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스페인의 시인 페드로 니에토 벨라스코(Pedro Nieto Velazco)는 1927년에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다.

코르도바, 고대 도시,

거기에 하나의 메스키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이롭습니다.

그것은 흰색 대리석 기둥과

황금빛 모자이크 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스키타는 기도의 장소이지만,

아름다움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곳,

영혼은 평화로 가득 찬 곳.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서,

역사가 느껴집니다.

위대한 문명이었던,

그리고 예술과 문화의 유산을 남긴 문명.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상징입니다.

다른 문화 간의 공존의 상징,

인류의 풍부한 문화유산의 상징.

 

이 시는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찬미하고 있다. 시인은 메스키타의 흰색 대리석 기둥과 황금빛 모자이크 천장을 묘사하며, 그 아름다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또한 메스키타가 기도의 장소이자 문화의 장소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메스키타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시대의 증거이며, 인류의 풍부한 문화유산의 상징임을 강조했다. 이 시를 뒤로 메스키타 사원을 나와 미로처럼 얽혀있는 사원 뒤쪽의 골목길로 갔다.

 

▲ 비좁지만 아름다운 메스키타 사원 뒤쪽의 미로 같은 꽃길, 맨 끝에 종탑이 보인다.     ©경기데일리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사원 종탑 뒤 골목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이 골목길들은 메스키타가 지어질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원래는 이슬람교도가 거주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중세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였다. 이를 근거로 이 거리를 유대인 거리라고 부른다.

 

골목길 양편에는 하얀 회반죽으로 칠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런 집 발코니와 벽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벽에 매달린 화분에 심어져 있다. 그 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마치 꽃밭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에 이 『길』은 꽃길이라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꽃길은 매년 봄과 여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을에 이 거리를 거닐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쁜 화분에 이름 모를 꽃이 우리에게 즐거움과 추억을 안겨 주었다. 우리보다 뛰어난 감성을 지닌 시인들도 그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했다.

 

1492년, 스페인 왕국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스페인어로 재정복을 의미함)를 완수하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 스페인 왕국의 정책에 따라 유대인들은 코르도바를 떠나야 했고, 오늘 날 그들의 거주지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 골목길을 눈에 넣고 가슴에 품은 채 돌고 돌아 12시 14분 산 바질리오(SAN BASILIO)라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면서 12시 15분에 오찬을 하기 위해 가이드가 예약을  해두었다. 우리는 12시경에 도착했지만, 준비가 안 되었다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바람에 골목길에서 10여 분 서성거리다 예약 시간 1분을 남겨둔 12시 14분에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산 바질리오(SAN BASILIO) 레스토랑 실내에는 다양한 소품이 걸려 있는데도 전혀 산만하거거나 수선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짜임새 있고 안정감을 주었다.     © 경기데일리

 

주택을 개조한 20평도 안 되어 보이는 레스토랑 내부는 청화백자 접시부터 말 그림에 여러 사진과 장신구가 오밀조밀 벽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산만하지 않고 안정감을 주면서도 아늑했다. 화장실에서 볼 일 보고 손을 씻는 세면대는 이슬람 문양의 자기에 오래된 수도꼭지를 달아놓아 식당의 품위를 높여주면서도 신비감까지 더해 주었다.

 

▲ 이슬람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오래된 수도꼭지 그리스 말발굽 모양의 수건 거치대     © 경기데일리

 

나는 너무 실내 데코레이션(Decoration: '장식품' 또는 '장식')이 좋아 20여 장의 사진을 찍고서야 오찬으로 나온 빵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음식은 가늘게 썰어 반쯤 말린 가지 튀김과 프랜치 프라이(감자 튀김)이 특식으로 나왔다, 주 메뉴는 익힌 닭고기였다. 후식까지 합치면 4가지쯤 되었는데 한가지의 요리가 나오는데 거의 20분쯤 소요되었다.

 

한국 여행객은 어느 식당에 가든 식사를 전쟁 하듯이 빨리빨리 먹어 치우므로 20분쯤이면 식사가 모두 끝난다. 길어야 30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1시간 10분 정도 식사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만큼 임원들 간에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지금껏 들른 레스토랑 중 단연 최고였다. 

 

미국의 요리연구가이자 셰프였던 줄리아 차일드는 『화려하고 복잡한 걸작을 요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요리하라』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레스토랑이 그런 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음식이 풍요로운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좋았고 서둘지 않아서 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좋은 레스토랑은 첫째가 맛있는 음식이다. 신선한 재료와 정성껏 조리된 음식은 좋은 레스토랑 조건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둘째가 인테리어다. 인테리어는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음식의 종류와 콘셉트에 맞는 인테리어를 통해 손님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가 좋은 분위기다.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는 식욕을 돋우고, 음식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넷째가 친절한 서비스다. 친절하고 세심한 서비스는 손님들에게 만족감을 주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 밖에 조명과 음악이다. 조명은 분위기를 좌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요, 음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 크고 작은 액자와 샹그리라 전등,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4인용식탁     © 경기데일리

 

우리가 식사 중인데도 손님이 몰려들었지만, 예약 손님 이외에는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 손님을 받기 위해 손님에게 독촉도 하지 않았다. 수용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식당 주인의 영업 철학 때문에 지역의 상권이 고루고루 잘사는 공존의 동네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정신이 배어 있었다. 그 점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 토마토, 당근, 피망, 양파 그리고 빵이 전부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오찬이다.     © 경기데일리

 

우리나라의 경우 장사가 잘되면 지점을 차리고 가게를 넓히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아우성친다. 이것이 우리의 사는 방식이요, 상식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독식 문화를 볼 수가 없었다. 이게 협동조합의 설립 정신 아니던가? 오찬을 하면서 이런 정신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더욱 상쾌했다.

 

이래서 앙겔 구티에레스(Ángel Gutiérrez) 같은 유명한 스페인 시인이 지금부터 38년 전인 1985년에 이곳의 거리를 보고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르도바의 꽃밭

 

꽃이 흐르는 거리,/꽃이 노래하는 거리,

꽃이 춤추는 거리,/코르도바의 꽃밭.

 

꽃이 흐르는 거리,/햇살이 흐르는 거리,

꽃이 흐르는 거리,/코르도바의 꽃밭.

 

꽃이 흐르는 거리,/사랑이 흐르는 거리,

꽃이 흐르는 거리,/코르도바의 꽃밭.

 

이 시에서 시인은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꽃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것과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했는데 나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시인은 그 꽃밭을 따라 걷는 순간을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경험으로 표현했는데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 유대인 거주지라는 꼬르도바 메스키타 사원 옆길     © 경기데일리

 

이 시는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아름다움과 역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서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시의 중심에 놓인 거리가 유대인 거주지였다. 13세기 초, 코르도바는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도시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스키타 사원 종탑 뒤쪽의 우리가 음식을 먹었던 식당주변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유대인 거리의 상가와 식당을 사이에 두고 꽃이 흐르는 거리, 사랑이 흐르는 거리임을 노래할 만했다. 사랑이 흐르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도시를 떠나도 이곳에 흐르는 정서와 정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아름다운 생각을 마음에 담은 채 세비아로 가기 위해 오후 1시 30분에 모두 버스에 올랐다.

 

▲ 후식으로 나오는 오렌지를 야박스러울 정도로 잘라서 접시에 내 놓았지만 품격과 격식이 우리와는 달랐다. 우리라면 한 테이블에 한 접시겠지만 네 접시로 한 사람당 한 접시가 나왔다./오찬은 닭다리 반쪽이 주 메뉴였다. 하지만 풍요로운 오찬보다 더 좋았다./주방도 아주 청결하고 위생적 이였으며 정리정돈이 잘되어있었다.     © 경기데일리

 

▲ 애초 2층 발코니로 보였는데 나무천장을 올려서 멋진 식당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 경기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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