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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詩 -나그네 가는 길에 詩가 있어] (4)名妓可憐(명기가련)
이상호 칼럼니스트   |   2023-12-03
▲  이상호 칼럼니스트,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가련은 가히 명기로다

김삿갓이 가련의 집에 들어와 몇 날을 묶으며 가련(可憐)을 향한 연정에 전방위적으로 공을 들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가련이 드디어 마음을 열고 김삿갓을 받아들였다. 가련은 김삿갓을 자기 방으로 들였다. 그리고 주안상을 차려 놓고 김삿갓과 술 한잔을 나눈다.

 

그때까지 김삿갓은 가련이 여느 기생과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풍류를 아는 성숙한 기녀임에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가련의 방안에 들어선 김삿갓은 가련의 방안의 분위기를 보고 짐짓 이제까지 가련을 과소평가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삿갓이 가련의 방안에 들어섰을 때 가련의 방안에는 문갑이 놓여 있고 문갑 위에는 이백과 왕유의 시집이 놓여 있었다. 가련은 이백과 왕유의 시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그것은 김삿갓이 가련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삿갓은 이제 가련을 풍류의 상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 강원도 영월 김삿갓면 난고 김병연 시조각 공원     © 경기데일리

 

김삿갓이 가련의 방안에 자리를 정하고 앉아 주위를 살폈다. 벽에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왕유의 춘계문답(春桂問答)이었다. 

 

問春桂(문춘계)-봄날의 계수나무에게 묻노니

桃李正芳華(도이정방화)-복숭아꽃 오얏꽃 향기 바야흐로 그윽하고

年光隨處滿(연광수처만)-봄볓은 가는 곳마다 가득한데

何事獨無花(하사독무화)-어찌 그대만 홀로 꽃이 없는가?

 

春桂答(춘계답)-봄청 계수나무가 대답하다

春花詎幾久(춘화거기구)-봄에 핀 꽃들이 어찌 오래 가리오

風霜搖落時(풍상요락시)-바람 불고 서리 내려 흔들려 떨어질 때

獨秀君不知(독수군부지)-홀로 빼어남을 그대는 왜 모르는가?

 

이 시는 고문진보에도 수록된 왕유의 시이다. 왕유(王維 701~761)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李白701~762),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杜甫712~770)와 함께 당나라 3대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詩)와 서화(書畫)에 뛰어났다. 남중화(南宗畵)를 열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산수화를 잘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뒷날 송나라(宋960~1279) 시대의 소식(蘇軾1036~1101)은 그의 시와 그림을 평하기를 ‘詩中有畵 畵中有詩(시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속에 시가 있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현종 때 천보(안녹산)의 난이 일어났다. 그때 많은 사대부가 안녹산에게 협력하였다. 왕유도 난군(亂軍군)에 잡혔으나, 약을 먹어 벙어리가 되었다고 하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시를 지어 읊으며 시세를 한탄했다. 이때부터 그는 은둔하며 속세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는 그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늙어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검소하고 한적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만연의 시(詩)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를 시불(詩佛)이라고도 부른다. 

 

이 시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으로는 왕유가 속세에 은둔하면서 지은 시이므로 은둔하는 고고한 자기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 진다. 이를테면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소인배들이 봄꽃을 맞이한 것처럼 그에 협력하며 권세를 누리는 것에 비하여 자신은 오직 가을에 꽃들이 시를 때 온갖 풍상을 이기며 서 있는 가을의 계수나무처럼 홀로 빼어남을 드러낸 것이다.

 

선비가 비록 궁지에 몰려있지만, 지조를 굽히지 않는 것에 비교하여 문답 형식으로 지은 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월이 흐르면서 서정적으로만 해석하여 외로운 남녀의 마음과 군자의 고고함을 드러낸 시로도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시에는 전자의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시에서 春桂(춘계)는 봄의 계수나무를 지칭한다. 桃李正芳華(도이정방비)에서 정(정)은 ‘바로, 지금, 바야흐로’이며 방(芳)은 ‘꽃향기’, 華(화)는 ‘꽃’이다. 年光隨處滿(연광수처만)에서 年光(연광)은 ‘새봄의 햇빛’, 隨(수)는 ‘따르다’는 뜻으로 隨處(수처)는 ‘가는 곳마다’를 의미하며, 滿(만)은 ‘가득하다’를 말한다. 春花詎幾久(춘화거기구)에서 詎(거)는 ‘어찌’라는 의미이며, 幾(기)는 ‘기미 낌새’를 말한다. 風霜搖落時(풍상요락시)에서 風霜(풍상)은 비바람으로 혼란한 세월, 역경을 의미한다. 搖(요)는 ‘흔들린다’는 것이다. 獨秀君不知(독수군부지)에서 秀(수)는 ‘빼어나다’는 것으로 여기서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것’을 지칭한다. 

 

 봄날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곳곳에 피어 향기를 풍기며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오직 계수나무만은 홀로 꽃이 없이 서 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처량하게 보지만 왕유의 그에 대한 대답은 전혀 다르다. 봄철 향기를 자랑하는 그 꽃들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가을이 깊어 비바람 찬 서리 내리면 모두 떨어지고 시드는 것을.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계수나무만은 그때도 우뚝 서 있느니 홀로 빼어난 것이 아닌가? 독야청청(獨也靑靑)이로다. 계수나무의 절조 있는 모습을 자기에 비춘 것이다. 

 

가련은 왜 이 시를 좋아했을까? 좋아하기에 벽에 걸어 둔 것이 아닌가? 주위에 자신이 꽃임을 자랑하며 남정네들을 희롱하는 여인네들이 있지만 자기만은 홀로 꽃이 없더라도 고고하게 절조(節操)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아무에게나 호락호락하지 않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것일까? 이쯤 되면 가련은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풍류를 알고 절조를 지킬 줄 아는 기생(妓生)이다. 그런 가련을 보며 김삿갓은 가련이 또 가련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김삿갓은 이에 시 한 수를 읊는다. 

 

名妓可憐(명기가련)-가련은 가히 명기로다

名之可憐色可憐(명지가련색가련)-이름은 가련이요 얼굴도 가련한데

可憐之心亦可憐(가련지심역가련)-가련의 마음 또한 가련하네

  

名(명)은 이름이요, 色(색)은 얼굴이다. 여기서 역시 앞과 뒤의 가련(可憐)이란 의미는 다르다. 기구(起句)와 결구(結句)에서 앞의 가련은 이름이요. 뒤의 가련은 가련의 모습이 청순하고 불쌍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보면 김삿갓은 언어유희의 달인이다. 얼굴도 마음도 가련하게(불쌍하게) 보이니 그 불쌍한 몸과 마음을 거둬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들으며 가련은 김삿갓에게 마음을 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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