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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사람에게 밤을 새워 편지를 써 본 사람은 그 마음이 어떤지를 안다. 그리고 연모의 마음을 어떻게 담을까를 밤을 새워 고민한다. 이런 말 저런 말 온갖 언어를 탐색하다가 써 놓은 편지를 찢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꽂힌 자기만의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연모하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초겨울 밤은 깊어 간다. 바람이 문풍지를 때리고 지나간다. 방안에 홀로 누운 나그네 김삿갓의 마음이 산란하다. 낮에 본 베 짜는 연인, 가련(可憐)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첫눈에 반한 것이다. 그것은 여인의 아름다움도 작용했겠으나 나그네의 허허로운 마음이 작동한 것인지 모른다. 김삿갓은 지필묵을 펼쳐 놓고 시 한 수를 짓는다. 몇 날을 묶어 갈 마음으로 기생 可憐(가련) 모녀의 집에 들어선 김삿갓이 첫눈에 반한 여인, 베 짜는 可憐(가련)에게 연모의 마음을 담아 쓴 시를 전한다.
可憐行色可憐身(가련행색가련신)-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이 몸이
可憐門前訪可憐(가련문전방가련)-가련의 문전으로 가련을 찾아든다
可憐此意傳可憐(가련차의전가련)-가련한 이 마음이 가련에게 전해지면
可憐能知可憐心(가련능지가련심)-가련은 가련한 내 마음을 능히 알아주겠지
시에서 行色(행색)은 사람의 몸꼴이다. 그런데 그 행색이 필시 불쌍하게 보인다. 김삿갓 자신의 불쌍한 모습을 스스로 강조한 것이다. 訪(방)은 찾아든다. 방문하다 의 뜻이다. 가련의 문전으로 가련을 찾아든다는 것이니 연모의 수작을 거는 모습이다. 可憐此意(가련차의)는 ‘가련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가련하다’고 낮추었다. 傳可憐(전가련)은 ‘가련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能知(능지)는 ‘능히 알아주겠지’라는 추측의 말이다. 可憐心(가련심)은 ‘가련한 김삿갓 자신의 마음’이다. 가련에게 연모의 정을 품은 자신이 가련하고 자신의 행색 또한 가련하다.
사내나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모의 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 ~ 1587, 조선 중기 서예가 문신, 문장가)처럼 호방하게 읊을 수도 있지만 김삿갓은 ‘가련(可憐)’에게 매우 조심스럽고 가련한(불쌍한) 기색으로 접근하였다. (*참고 : 임제는 당시 유명한 기녀 시인 황진이를 살아서 만나기를 학수고대하였다. 그러나 황진이는 사십대에 병에 걸려 죽었다. 황진이는 유언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대로변에 묻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황진이의 묘는 대로변에 있었다.
황진이의 기예(技藝)를 높이 평가했던 임제는 황진이의 묘소를 찾아 술 한 잔 부어 놓고 황진이의 넋을 달래는 시를 읊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느냐 누웠느냐/紅顔을 어디두고 白骨만 묻혔느냐/盞 잡아 勸할 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이후 조정에서는 사대부가 기생에게 술을 올리고 그를 기리는 시를 지은 것을 문제 삼아 탄핵하여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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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김삿갓이 기생집 처녀 ‘가련(可憐)’에게 반하여 외로운 자신의 가련한 행색을 호소하며 연정을 구하는 시이다. 기생 처녀 이름인 가련과 자신의 가련한 심정의 ‘가련(可憐)’을 혼용하여 쓰면서 가련을 향한 지극한 연모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시에서 한 단어를 연속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 자신의 마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가끔 쓰이는 시작(詩作) 방식이다. 김삿갓은 가련(可憐)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마음과 그 깊이를 드러내었다. 어쩌면 언어유희이다. 현대 시에서도 이런 형태는 나타난다.
이를테면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 한없이 //..........//......//......// 아 썅!(왜 안 떨어지지?) -최승자<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전문”와 같이 한 단어를 반복 함으로써 그 마음을 심화시켰다.
어쨌든 이 시에서 김삿갓은 ‘가련(可憐)’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시의 완성을 이룬다. 시에서 기구(起句)의 ‘가련(可憐)’ 두 구(句)와 전구(轉句)의 첫 번째 ‘가련(可憐)’, 결구(結句)의 두 번째 ‘가련(可憐)’은 가련하다(불쌍하다)는 뜻이고, 승구(承句)의 두 ‘가련(可憐)’과 전구(轉句)의 두 번째 ‘가련(可憐)’ 결구(結句)의 첫 번째 ‘가련(可憐)’은 처녀 기생 ‘가련(可憐)’의 이름을 지칭한다.
첫 번째 구(句)인 기구(起句)의 ‘可憐行色可憐身(가련행색가련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이 몸이’는 김삿갓 자신의 신세가 가련함을 지극히 소박한 마음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가련한 신세를 호소하며 가련(可憐)의 문전을 찾아든다. 승구(承句)에서 ‘可憐門前訪可憐(가련문전방가련)-가련(可憐)의 문전으로 가련(可憐)을 찾아든다’는 것은 김삿갓이 먼저 가련(可憐)에게 구애(求愛)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가련(可憐)을 사랑하는 가련(可憐)한(불쌍한) 자신의 마음이 연모하는 가련(可憐)에게 전해 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가련을 향한 그윽한 연모의 마음은 가련하기 짝이 없다. 그런 자신의 가련한(불쌍한) 마음이 가련(可憐)에게 전해지면 가련(可憐)은 필히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가련이며, 가련한 내 마음을 헤아려 받아 주시오’라는 지극한 연모와 구애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사람에게 연모의 마음이 가슴에 맺히면 잊기 어렵고 그 마음이 실현될 때까지 환상처럼 남게 된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강할 때 더욱 그렇다. 그것은 한 사람에게 쏠리는 지극히 편파적이며 비합리적인 정(情)임에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방랑자 김삿갓에게도 그런 순수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기야 마음이 순수했기에 모든 벼슬을 버리고 방랑의 길을 떠나지 않았을까?
유명한 『신곡(神曲)』을 쓴 단테가 어린 날 피렌체 은행가의 딸인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그 여인에 대한 실현되지 못하는 깊은 연정은 그의 작품에 줄곧 나온다.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는 단테에게는 완벽한 여인이었다. 그런 단테였기에 그의 작품속에 자기의 아이를 낳아준 부인 ‘젬마 도나티’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김삿갓이 본 베 짜는 여인 가련(可憐)도 완벽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김삿갓이 평생 방랑 시(詩)에서 아내가 언급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젬마 도나티’에게 단테는 야속한 남자였듯이 김삿갓의 아내에게 김삿갓은 야속한 남자였을지 모른다.
연모의 정을 품은 사람에게 밤을 새워 편지를 쓴 것이 제대로 전해지면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 전해진 마음을 상대가 알고 받아 주면 사랑은 이루어진다. 그때 한없이 행복해진다. 초겨울 삭풍이 불어온다. 나그네 김삿갓은 갑자기 춥고 외로워진다. 여인의 따뜻한 품 안이 그립다.
가련(可憐)은 가련(可憐)한 김삿갓의 마음을 알고 받아 주었을까? 김삿갓은 추운 방안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뒤척이었을 것 같다. 可憐可憐能知可憐心(가련가련능지가련심-가련이여, 가련이며, 가련한 내 마음을 알아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