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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방랑詩 -나그네 가는 길에 詩가 있어] (1) 織錦(직금) -베짜는 모습을 보며
이상호 칼럼니스트   |   2023-11-15
▲ 이상호, 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칼럼니스트)   

 이상호 칼럼니스트는 고교교장으로 정년 후 천안.아산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대표로 사회단체장을 맡아왔다. 지금은 사단법인 충남포럼 상임이사로 계신다.

 

 어려서 한학인 사서오경을 읽었다. 그래서 한문에 대한 조예가 깊다.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야인이 되어 독작경락(讀作耕樂)하며, 보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몇몇 신문에 주옥 같은 글을 기고하고 계시는 분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대표 풍자와 해학의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1807 ~ 1863]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 부른다.

 

 

진실과 본질을 추구하는 <경기데일리>는 이상호 칼럼니스트의 [김삿갓 방랑시 -나그네 가는 길에 시가 있어]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는 김삿갓 묘와 조각공원이 있다.     © 경기데일리

 

1. 織錦(직금) -베짜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추위가 들이닥쳤다. 한 며칠간 추위는 계속된단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진다. 특히 추위는 나그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때 하룻밤 아니 몇 날을 묶어 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그것은 더 없는 행운이다. 

 

김삿갓이 겨울날 방랑의 길을 걷다가 한 선비를 만났다. 그 선비의 이름은 최박담이다. 선비 또한 김삿갓처럼 풍류를 좋아한다. 풍류를 즐기는 사람치고 기방(妓房) 출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선비는 김삿갓에게 묶어 갈 거처를 마련해 주려고 길을 안내했다. 선비가 김삿갓을 데리고 간 곳은 단아하고 소박한 집이었다. 

 

김삿갓은 며칠을 묶을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섰다. 가련(可憐) 모녀의 집이었다. 집안은 조용한데 방 한쪽 안에 단아한 차림의 여인이 베를 짜고 있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가련(可憐)이었다.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는 가련을 보자 감삿갓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마음이 그 여인에게 홀렸다. 베를 짜는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버린 것이었다. 시 한 수를 읊었다.

 

織錦(직금) -베짜는 모습을 보며

 

煙梭出沒輕似鳧(연사출몰경사부)-안개를 일으키며 드나드는 북은 물오리처럼 경쾌하고

響入秦天半夜烏(향입진천반야오)-소리는 진나라 한밤중 하늘에 우는 까마귀 아닐까?

聲催月戶鳴機蟀(성최월호명기솔)-베틀 소리는 달빛 창틀에서 우는 귀뚜라미 같고

巧學風簷繹絡蛛(교학풍첨영락주)-그 재주는 바람 부는 처마 밑에서 실을 엮는 거미같다

但使織成紅錦貝(단사직성홍금패)-다만 홍금패의 고운 비단을 짜낼 수만 있다면

何須願得白裘狐(하수원득백구호)-어찌 흰 옷을 얻으려고 여우의 갖옷을 원하리오

曝曬於陽光鶴鳴(폭쇄어양광학명)-곱게 짠 비단을 햇볕에 말리면 눈부시게 흰 백학 같은데

吳門誰識絹如駒(오문수식견여구)-누가 저 고운 비단을 망아지 같다고 하지 않겠는가? 

 

어린 날의 기억이다. 어머니는 겨우 내내 베를 짰다.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좌우를 날 듯이 오가는 북과 베를 짜는 바디의 실을 다지는 소리, 북이 오가고 바디가 베를 다지는 소리가 털커덕털커덕 날 때마다 거침없이 움직이는 어머니의 발, 베틀에 앉은 어머니의 그 자태는 지금도 아름다움으로 눈에 선하다. 그래서일까? 김삿갓의 이 시가 유독 가슴에 와닿는다.

 

煙(연)은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나 안개를 지칭한다. 梭(사)는 북이다. 베를 짤 때 씨올의 실꾸리를 넣는 베틀의 수속품의 하나다. 능숙한 솜씨로 베를 짤 때 좌우로 넘나드는 북이 마치 안개를 일으키는 듯하다. 그러니 煙梭出沒(연사출몰)은 안개를 일으키듯 드나드는 베틀의 북을 의미한다. 輕(경)은 가볍다는 것이다. 가볍게 보이니 재빠르다. 似(사)는 같다는 뜻이다. 鳧(부)는 물오리를 말한다. 그러니 輕似鳧(경사부)는 물오리처럼 경쾌하다는 뜻이다. 첫 구를 보면 가련의 베 짜는 솜씨는 능란하다. 

 

響(향)은 울림의 소리이며, 烏(오)는 까마귀이다. 까마귀는 검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아’하는  탄식의 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베틀에서 북이 오가고 바디가 실을 촘촘하게 두드리는 소리는 秦天半夜烏(진천반야오) 즉 진나라 한밤중 하늘에 우는 까마귀 아닐까? 라고 상상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나라 말기 밤하늘에 까마귀 떼가 무리를 지어 하늘 가득하게 날며 까악까악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는 불길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불길한 소리로서의 진나라 까마귀가 아니라 북이 오가는 소리의 경쾌함을 진나라 밤하늘의 까마귀 소리에 견주어 본 것이리라.

 

계속하여 가련의 베 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聲催月戶鳴機蟀(성최월호명기솔)에서 催(최)는 재축하다는 것이며, 機(기)는 ‘틀 기’로서 베틀을 의미한다. 蟀(솔)은 귀뚜라미이다. 김삿갓은 베를 짤 때 베틀에서 나는 소리(덜커덕덜커덕 혹은 삐거덕삐거덕 등)를 귀뚜라미 소리로 치환하였다. 그래서 베틀 소리는 달빛 창틀에서 우는 귀뚜라미 같다고 하였다. 귀뚜라미 소리는 한적한 겨울밤 애끓는 소리다. 님을 그리워하는 소리다. 그 소리는 곧 가련이 어딘가 있을 님을 기다리는 소리로 치환된다. 

 

제 4구에서 巧(교)는 공교하다, 예쁘다는 것이며, 簷(첨)은 집의 추녀 끝 즉 처마를 말한다. 風簷(풍첨)은 바람 부는 처마 끝이다. 繹(역)은 풀어내다는 것이며 絡(락)은 헌솜 즉 누이지 아니한 삼(麻)이나 명주를 말한다. 蛛(주)는 거미다. 거미가 바람 부는 처마 끝에서 집을 정교하게 잘 짓는 모습을 가련의 베 짜는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巧學風簷繹絡蛛(교학풍첨영락주)-가련의 베 짜는 그 재주는 바람 부는 처마 밑에서 실을 엮는 거미 같다고 하였다. 거미가 바람이 부는데 집을 짜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능숙한 거미는 바람을 이용하여 자기의 집을 촘촘하게 잘 짠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가련의 베 짜는 솜씨를 극히 칭찬한다. 가련의 베 짜는 솜씨는 장소와 환경 불문이다.

 

김삿갓은 상상의 나래를 편다. 但使織成紅錦貝(단사직성홍금패), 다만 홍금패의 고운 비단을 짜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紅錦貝(홍금패)는 붉은 실로 짜낸 명주이다. 매우 곱다. 귀하다. 아무나 가지기 어렵다. 그러니 何須願得白裘狐(하수원득백구호), 어찌 흰 옷을 얻으려고 여우의 갖옷을 원할 것인가? 裘(구)는 갖옷(가죽옷)을 말하며 狐(호)는 여우를 일컫는다. 따라서 裘狐(구호)는 여우의 가죽으로 만든 옷 즉 갖옷이다. 裘狐(구호)는 가련이 짜낸 紅錦貝(홍금패)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다. 

 

曝(폭)과 曬(쇄)는 둘 다 햇볕에 쬐어 말린다는 뜻이며 絹(견)은 명주를 말한다. 다 짠 베(명주-비단)를 물에 씻어 풀을 먹이어 햇볕에 말리는 것을 말한다. 駒(구)는 망아지를 말한다. 김삿갓의 상상은 이제 절정을 이룬다. 曬於陽光鶴鳴(폭쇄어양광학명), 그 곱게 짠 비단을 햇볕에 말리면 눈부시게 흰 백학 같은데, 吳門誰識絹如駒(오문수식견여구), 누가 저 고운 비단을 망아지 같다고 하지 않겠는가? 햇볕에 말리는 흰 비단이 바람에 날리어 나풀거리는 모습은 마치 흰 망아지가 가볍게 뛰는 모습과 같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삿갓은 가련이 짠 베를 햇볕에 말리는 것을 보지 않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펴 그 베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읊는 것으로 가련의 베 짜는 솜씨와 아름다운 자태를 극찬하고 있다. 이 시는 시종 베를 짜는 가련의 모습을 본 김삿갓이 상상력 발휘하여 표현한 것이며 가련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모습을 드러낸다. 김삿갓은 그런 가련에게 마음이 홀린 것이 분명하다.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 유럽에서는 한때 창백한 얼굴의 여인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많은 여인이 결핵에 걸리기를 바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 여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기능이자 덕목의 하나는 베를 짤 줄 아는 일이다. 베를 잘 짜는 여인은 그 하나로서 부덕(婦德)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온 가족의 의복 문제의 해결은 물론 가정 수입원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베 짜는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청순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김삿갓에게 비친 가련의 베 짜는 모습 역시 청순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학(鶴)이었을 것이다. 

 

이런 극찬의 시 한 수를 읊는 모습을 본 가련 모녀(母女)가 김삿갓을 그냥 내치지는 않았으리라. 그 옛날 김삿갓 시대에 나그네에게 있어서 시와 풍류는 하룻밤 묶어 가는 대가로서 충분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면 오늘날보다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가슴에 더 큰 낭만과 인정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김삿갓은 가련의 집에서 몇 날을 묶어 간 것으로 전한다. 나그네의 시 한 수를 사랑할 줄 알았던 가련 모녀 또한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으리라. 

 

겨울밤 나그네의 시 한 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낭만의 세상이 돌아왔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각박하고 이해타산적으로 변해버려서 나그네의 그런 시 한 수에 방 한 칸을 덥석 내 줄 것 같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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