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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6) 톨레도의 영혼과 역사, 자연을 만나다
김성윤 주필   |   2023-11-11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톨레도 대성당에는 지난 회에서 소개했던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백색의 성모』 오르가즈 『성가족(Holy Family』 이외에도 수많은 그림과 조각이 미술관처럼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 더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은 톨레도 대성당의 『성체현시대』다. 성체현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현시(顯示)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금은 세공품 중 하나다. 높이가 무려 3m나 되며 무게는 180kg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1502년부터 1518년까지 독일의 금은의 세공장인 페터 휘트너(Peter Wimmer)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 다가서자마자 우리의 눈을 휘둥그러지게 한 것은 180kg이나 되는 순금과 은,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희귀한 귀금속과 보석의 어울림 때문이다.

 

▲ 톨레도 대성당에 안치 되어 있는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 경기데일리

 

성체현시(Exposition of the Holy Eucharist)은 신도들이 흠모하고 공경할 것을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성체는 미사 중에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말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성체현시대의 중앙에는 성체를 상징하는 금빛 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한다.

 

성체현시대의 네 면에는 성경 속의 다양한 장면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북쪽 면에는 예수의 탄생, 동쪽 면에는 예수의 성탄, 남쪽 면에는 예수의 부활, 서쪽 면에는 예수의 승천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성체현시대의 아래쪽에는 천사들이 성체를 경배하는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성체현시대는 톨레도 대성당의 보물 실에 전시되어 있으며, 매년 성체 축일이 되면 성체를 모시고 도시 곳곳을 돌며 악을 막고 강복(降福)을 빈다. 강복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에 감사드림을 의미한다.

 

성체현시대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종교 예술품이요, 인류의 보물이다. 또한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인류의 보물을 뒤로 한 채 다음 여정으로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중에서 1903년에 쓴 시 『기도』를 통하여 톨레도 대성당과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기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님,/이 세상에서/내가 살아가는 방식을/당신께 맡기나이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당신의 사랑이 나를 이끌기를,

당신의 빛이 나를 비추기를,/당신의 평화가 나를 지키기를.

 

이 시는 간결한 언어로 인간의 삶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주님의 사랑과 빛과 평화를 구하고 있다. 시의 첫 부분에서 시인은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당신께 맡기나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인이 자신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의 두 번째 부분에서 시인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인이 주님의 뜻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의 세 번째 부분에서 시인은 "당신의 사랑이 나를 이끌기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인이 주님의 사랑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의 네 번째 부분에서 시인은 "당신의 빛이 나를 비추기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인이 주님의 빛이 자신의 삶을 비추어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의 다섯 번째 부분에서 시인은 "당신의 평화가 나를 지키기를"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시인이 주님의 평화가 자신의 삶을 지켜 주기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릴케의 『기도』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잘 보여준다. 릴케는 인간의 삶이 주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주님의 사랑과 빛과 평화 속에서 인간의 삶이 풍요롭게 되기를 바랐다.

 

릴케의 시 『기도』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시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주님의 사랑과 빛과 평화를 구할 수 있기를 톨레도 대성당을 떠나면서 빌어 본다.

 

우리는 1차 집결지이었던 플라자 마요르(Plaza Mayor) 광장까지 뒤돌아 나와서 3~4분쯤 구도시의 아기자기한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따라갔다.

 

▲ 이 골목 맨 끝에 산토 토메 성당이 있다. 골목이 한 폭의 그림처럼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경기데일리

 

그곳엔 그 유명한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이라는 명화를 보관 중인 스페인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586년에서 1588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14세기에 톨레도에서 일어난 기적을 묘사한 것이다.

 

즉 산토 토메 성당을 재건하고 모든 재산을 헌납한 오르가르 백작의 장례식을 기념하여 그린 그림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두 성자를 지상에 내려 보내 그들이 백작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장면도 나와 있다.

 

▲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 경기데일리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스페인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대중의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엘 그레코의 독특한 화풍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엘 그레코의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의 가치도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는 이 작품이 1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어 고가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평가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1950년대에 들어서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60년에는 이 작품이 1,0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5,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오늘날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1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세기 초 이 작품이 처음으로 평가받았을 때보다 100배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우리는 그림 1점이 1,300억 원이나 되는 예술품 앞에 서는 것은 물론 사진도 마음대로  촬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만난 가장 값진 시간이요, 보람된 시간 앞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이 작품이 이렇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는 첫째가 엘 그레코의 독특한 화풍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당시 일반적인 회화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그는 긴 팔과 다리를 가진 인물, 비스듬한 구도, 밝은 색채 등을 사용하여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러한 화풍은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둘째 이유로는 작품의 역사적 가치 때문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14세기에 일어난 기적을 묘사한 작품으로, 스페인 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스페인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 번째의 이유로는 작품의 희소성 때문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엘 그레코의 유일한 대형 벽화 작품일 뿐만 아니라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산토 토메의 성당에 있었다. 이러한 희소성은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은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 희소성 등을 모두 갖춘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독창적인 화풍과 스페인 종교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백작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는 장면과 백작의 장례식     © 경기데일리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그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여기서 푸에르테 데 라 엔카르나시온의 성 프란시스코 교회 수도원장은 그가 신앙의 진정한 옹호자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훌륭한 성품의 인물이었던 돈 후안 데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이 그림을 헌정합니다. 1586년 5월 6일

 

이 글은 그림을 의뢰한 산토 토메 성당의 수도원장인 프란시스코 데 에스코바르의 서명과 함께 적혀 있다. 글의 내용은 오르가스 백작이 신앙심이 깊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이었으며, 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이 그림을 헌정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은 그림의 주제와 의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의 상단에는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는 장면이, 하단에는 백작의 장례식이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오르가스 백작의 영적인 구원과 육체적인 죽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삶이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 글의 내용은 당시 스페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16세기 스페인은 가톨릭 개혁의 영향으로 종교적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던 점도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오르가스 백작의 삶과 죽음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 백작의 장례식, 백작의 영혼이 천국에 올라가는 장면, 후안 데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이 그림을 헌정한다는 글이 있다.     © 경기데일리

 

1시간 30분 동안 톨레도 대성당과 산토 토메 성당을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다 보니 11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로(노)베르또의 제안으로 이곳의 특산품인 오르가닉 트리(Organic Tree)라는 유기농 올리브유 전문점을 들러 보기로 했다. 일정표상에는 쇼핑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안내하는 로(노)베르또가 국적은 스페인이지만 그의 피는 양부모가 한국인이기에 그 역시 한국인이다. 그 점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인 데다 공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 오르가닉 트리(Organic Tree) 유기농 올리브유 전문점, 금상 상패와 상품에 관한 게시물이 아주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걸려있다.     © 경기데일리

 

하지만 가게를 들어서는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게가 아주 깨끗한 데다 상품의 질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 거울 아래는 2019년 세계 최고의 올리브유로 금상을 수상(Organic Tree /World's Best Olive Oils for 2019)한 상장이 걸려 있다. 상을 수여한 곳은 하단에 NYIOOC 라고, 적혀있다. 이 약자를 인터넷을 통하여 찾아보니 아래와 같았다. NYIOOC는 "New York International Olive Oil Competition"의 약자로, 뉴욕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의 올리브 오일 대회다. 이 대회는 1993년에 시작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2,000여 개의 올리브 오일이 출품되고 있다. NYIOOC는 블라인드 테스트 즉 눈을 가리는 텍스트를 통해 올리브 오일의 품질을 평가한다.

 

심사위원들은 올리브 오일의 풍미, 향, 맛, 균형, 순수성 등을 평가하여 9개의 카테고리에서 우승자를 선정한다. NYIOOC에서 우승한 올리브 오일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데 이 가게가 바로 그런 가게다. 우리는 올리브오일의 생산과정과 유통 그리고 효능에 관한 브리핑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들(생산자와 유통자)은 NYIOOC의 우승에 대하여 큰 자부심과 명예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보답은 정성을 다해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48유로짜리 발사믹 식초와 58유로짜리 올리브유를 취향에 따라 구매할 수 있었는데 병도 고급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병에 붙은 상표의 디자인도 아주 뛰어났다. 우리나라의 들기름도 이에 못지않은 성분을 가지고 있는 아주 뛰어난 기름인데 그 가치는 올리브유의 3분의 1도 안 된다. 그 원인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 이르자 천안농협의 책임과 할 일이 더 무거워지고 많아 보였다. 우리는 로컬푸드의 특화 전략을 어떻게 세우고 어떤 마케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 수 배우고 다음 여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르가닉 트리(Organic Tree) 가게를 나와 다시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 쪽으로 가서 타호강의 알칸타라 다리까지 로마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성곽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우리가 걷는 길은 직선으로는 약 1.2km쯤 되나 길이,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1.5km 정도는 되어 보였다. 

 

▲ 로마시대에 쌓았다는 성곽과 아치 속으로 보이는 알칸타라 다리     © 박익희 기자

 

타호강까지 내려가서는 알칸타라 다리를 여러 관광객과 섞여서 건넜다. 다리를 건너기 전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리에서 보는 강기슭 양쪽의 풍경은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인들은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시를 썼다. 그중에서  알칸타라 (Alcántara)란 시를 소개해 보겠다.

 

▲ 위에서 본 알칸타라 다리     © 경기데일리
▲ 로마시대에 쌓았다는 성곽과 아치 속으로 보이는 알칸타라 다리     © 경기데일리

 

 이 시는 스페인의 유명한 시인 가스파르 데 시에스 데 베르데가(Gaspar de Cies de Verdega) 지은 "알칸타라" 다리라는 시인데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알칸타라 (Alcántara)

 

타구스강의 보물, 알칸타라 다리여,

너는 영원히 톨레도의 자랑일지니.

너는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며,

여전히 그 위엄을 잃지 않았네.

 

너는 로마 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 주었네.

너는 전쟁과 평화의 증인이 되어,

톨레도의 역사를 지켜보았지.

 

알칸타라 다리여, 영원히 빛나라.

너는 톨레도의 상징이자,

스페인의 자랑일지니.

 

이 시는 가스파르 데 시에스 데 베르데가 1580년에 쓴 시라고 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알칸타라 다리를 "타구스강의 보물"이라고 부르며,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을 아주 많이 찬양하고 있다.

 

시인은 시의 첫 번째 연을 통해 알칸타라 다리를 톨레도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알칸타라 다리는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며 여전히 그 위엄을 잃지 않았으며, 톨레도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고 노래했다.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알칸타라 다리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다리는 로마 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수많은 사람을 품어주고 이끌어 주었다. 또한, 다리는 전쟁과 평화의 증인이 되어, 톨레도의 역사를 지켜보았다고 썼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알칸타라 다리의 영원한 존재를 소망하였다. 여기까지 둘러본 시간은 12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버스를 타고 시가랄 몬테 레이 톨레도(CIGARRAL MONTE - REY TOLREDO) 라는 레스토랑으로 오찬을 하기 위하여 이곳을 떠나야했다. 

 

▲ 시가랄 몬테 레이 톨레도(CIGARRAL MONTE - REY TOLREDO) 라는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본 톨레도     © 경기데일리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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