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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5) 톨레도, 그곳에 가면 가슴이 트이고, 머리도 개운
김성윤 주필   |   2023-11-07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

 오늘은 스페인에서 3일째 되는 날이다. 우리는 오늘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힐튼 호텔을 오전 8시에 떠나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는 유서 깊은 도시 톨레도(스페인어 똘레도, 영어 톨레도)로 간다. 톨레도와 마드리드를 연결하는 A-42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1시간 30분 동안 스페인의 중부 지역을 차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서 톨레도까지 왔다.

 

오는 동안 내가 본 산천은 마치 천안~논산 고속도로 주위의 낮은 산과 평야 지대와 유사한 지형이어서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평야와 구릉지대가 이어지다가 산이 나오고 그 산을 넘어, 또 산을 달리다 보니 톨레도란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고속도로의 요금소도 없고 휴게소도 없는 점이 특이했다. 하지만 어느 여행을 막론하고 위험과 긴장 그리고 위기를 동반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소매치기로부터 지갑과 여권을 지켜야 한다. 낯선 교통 환경으로부터 자기 신체도 보호해야 한다, 마실 물과 먹을 음식 그리고 내일을 위해서 숙면할 수 있는 호텔 등 모든 일상이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 상항이 매우 중요해진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 관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한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 플라자 마요르(Plaza Mayor) 광장의 구 시가지에서 멀리 끝에 보이는 톨레도 대성당     © 경기데일리

 

톨레도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에 위치한 중소도시로, 스페인의 옛 수도였으며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곳이다. 2023년 11월 기준으로 톨레도의 상주인구는 약 8만5,000명이다. 더욱이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의 활동무대요, 스페인의 주요 교육 중심지 중 하나로 매년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모여드는 지적인 도시다.

 

나는 평생을 교직자로 살았기에 오래된 대학교가 있다면 꼭 가보는데 이번에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톨레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는 1293년에 설립된 콤플루텐세 대학교다. 이 대학교는 현재 마드리드에 있지만 설립 초기부터 200년 동안 톨레도에서 운영되었다. 현재도 당시에 건립된 건물이 그대로 있으며 스페인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 중심 대학 중 한 곳이다.

 

콤플루텐세 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하였다. 그중 6명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만 보아도 얼마나 우수한 교육과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는 대학교인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다.

 

톨레도에 도착하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2~3분 언덕을 오르면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우리는 톨레도에 9시 30분쯤 도착하여 서둘러 언덕을 2~3분쯤 올라갔다. 그곳에 에스컬레이터 타는 곳이 있었다. 유명 관광지로 스페인의 주교성당이 있어서인지 순례자들로 번잡스럽다.

 

그 때문에 서둘러 언덕을 오르는데 미국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순식간에 뒤섞여 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나이는 먹었지만,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래선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1차 집결지인 플라자 마요르(Plaza Mayor) 광장까지 잘들 올라왔다.

 

▲ 플라자 마요르(Plaza Mayor) 광장, 맨 뒤쪽 건물이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이다     © 경기데일리
▲플라자 마요르 광장에서 유대인 지역으로 들어가는 곳 /구 시가지와 조화를 이룬 톨레도 대성당     © 경기데일리

 

 톨레도는 해발고도 575m 위에 있는 도시다. 그 도시 중에서도 플라자 마요르 광장은 높은 언덕 위 중심에 있다 16세기부터 정사각형의 광장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얼른 보아도 고풍스러운 데다 아늑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플라자 마요르 광장 주변에는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어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유대인 구역을 지나가면서 당시의 문물을 떠올려 보았다. 유대인 구역은 동판으로 여기가 유대인 구역이라는 표지판을 도로 위에 박아 놓아 누구나 쉬게 찾을 수 있다.

 

▲ 보도블록 사이의 유대인 구역이라는 표지가 동판으로 박혀있다.     © 경기데일리

 

톨레도의 유대인 구역은 기원전 2세기에 로마의 식민 도시가 된 이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부여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유대인이 톨레도로 이주해 왔다. 톨레도의 유대인 구역은 중세 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당시 톨레도는 스페인의 수도였으며, 유대인들은 상업, 금융,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4세기에는 톨레도의 유대인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곳에서 많은 유대인 학자가 배출되었다.

 

15세기에는 스페인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1480년에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톨레도 칙령을 반포하여 모든 유대인에게 강제 개종을 명령했다. 이에 많은 유대인들이 톨레도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유대인 구역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유대인 구역은 스페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대인 구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런 문화적 배경 때문에 톨레도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구역 내에는 유대인 회당, 목욕탕, 무덤 등이 남아 있다. 오늘 날까지 해마다 유대인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플라자 마요르 광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플라자 마요르 광장에서 톨레도의 성모 마리아 대주교 성당으로 가던 중 유대인 거리를 걸어오면서 당시의 건물을 비롯한 도시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플라자 마요르 광장 다음으로 방문하는 곳이 톨레도의 성모 마리아 대주교 성당(이하 톨레도 대성당이라고 표기하겠음)인데 9시40분쯤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톨레도 대성당은 10시부터 입장이 가능하기에 시에서 운영하는 공영 화장실 스페인 말로 화장실은 “아세요”(Aseo)다. 아세요에서 서둘러 볼일을 보았다.

 

유럽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럽은 화장실 문화가 야박스러울 정도를 너무 열악하다. 그런데도 공짜 화장실은 아주 드물다. 톨레도 대성당 공용 화장실은 남자가 볼일 보는 곳은 4곳쯤 되고 여자는 그보다 적은 것 같았다. 우리가 줄을 서 있는데 다른 관광객이 우르르 몰려와서 갑자기 혼잡스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끝내고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정면에 보이는 성당이 톨레도의 성모 마리아 대주교 성당이고 그 옆 건물이 시청사며 공용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 경기데일리

 

톨레도 대성당은 해발 516m의 언덕 위에 있다. 톨레도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성당은 타호강을 끼고 있다. 그 때문에 주변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성당은 도시의 중심부 중 언덕 위 가장 높은 부분에 있어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

 

이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 총교구이기 때문에. 톨레도 대교구의 주교가 머무는 성당이다. 톨레도 대교구는 1세기 성 대 야고보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전해지며, 313년 교구에서 대교구로 격상되었다. 톨레도 대성당은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266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되었다. 톨레도 대성당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 톨레도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건물이 톨레도 대성당이고 강을 끼고 언덕위에 사각형으로 보이는 건물이 알카사르 궁전이다.     © 경기데일리

 

이 대성당에는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제작된 다양한 제단화가 있다. 이 제단화들은 스페인 미술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이 그림들이 톨레도 대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예술적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왔다.

 

나는 이들 그림 중 1~2점을 대상으로 가이드 로(노)베르또 설명을 바탕으로 그림을 해석하고 설명해 보겠다. 물론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느 부분은 틀릴 수도 있다. 이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터넷 검색도 함께 하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이라는 제단화로 접근해 보자.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1577년에 완성된 제단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로마 병사가 옷을 벗기는 장면을 담고 있다.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이라는 주제의 작품에서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와 배신자 유다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여한 인물이다.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옷을 벗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예수의 옷을 벗기기 위해 손을 뻗고 있지만, 그의 표정은 무표정하고 무심하다. 이는 로마 제국의 예수에 대한 무관심의 상징을 작품에 표현했다고 한다.

 

▲ 성물실에 걸려 있는 성화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정면 가운데에 대리석 기둥까지 세워 모신 '엘 그레코'의 최고의 걸작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엑스폴리오:Espolio)이다.     © 경기데일리

 

배신자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신원을 알려준 인물이다. 그는 작품의 왼쪽 하단에 있다. 그의 표정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엘 그레코는 유다의 배신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의 상징을 작품에 너무도 잘 표현하였다.

 

이 두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여한 인물들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처하도록 물리적인 준비를 하는 인물이며, 배신자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처하도록 도덕적 준비를 하는 인물이다.

 

두 인물은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는 무표정하고 무심한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고 있지만, 배신자 유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러한 대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해 주고 있다.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에 대한 더 구체적인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다음과 같다.

 

▲ 톨레도 대성당의 장엄한 제단 정중앙 맨 위쪽에 십자가를 한 예수 그리스도  ©경기데일리

 

첫 번째 해석은 로마 병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강제로 옷을 벗기는 인물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은 로마 제국의 예수에 대한 무관심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두 번째 해석은 로마 병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위한 도구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은 로마 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연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배신자 유다에 대한 해석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다. 첫 번째 해석은 유다를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악한 인물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은 유다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두 번째 해석은 유다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이르도록 한 필연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은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계획을 위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 성가대 전경 그 왼쪽에 백색의 성모상     © 경기데일리
▲ 성가대 아래에 있는 너무너무 인자한 백색의 성모상만 확대하여 촬영해 보았다.     © 경기데일리

 

이러한 해석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밧줄을 잡은 로마 병사와 배신자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여한 인물이 되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인물에 대한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의 종교적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절망이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로마 병사들의 잔인함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작품의 배경은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올 비극을 예고하는 듯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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