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광고
광고
[스페인 여행기] (4) 마드리드 프라다 미술관: 농민과 명화라... 무엇이 영글까?
김성윤 주필   |   2023-10-31
▲ 김성윤 주필, 단국대 전 법정대학장, 정치학 박사     

하루 종일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은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이요,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것은 돈을 쓰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추구하는 방법이 달랐다. 추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은 원하는 상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장의 고객이 달라진 현장을 보고 4시 가까이 구시가지에 있는 비야 광장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마신 후 조금 휴식을 취했다.

 

그 후 4시 41분에 인근에 있는 프라다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미술관에 가까이 왔을 때 큰 성당이 보였는데 이 성당이 마드리드 알무데나 대성당(Catedral de la Almudena)이다.
 

▲ 프라다 미술관으로 이동하기 전에 비야 광장에서 음료수를 한잔씩 마시며 잠시 휴식을 했다.     © 경기데일리

 

프라다 미술관 정문 앞에는 고야의 흉상이 있고 그 왼쪽 언덕에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재된 대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이 바로 마드리드 알무데나 대성당이다. 

 

알무데나 대성당은 1885년부터 1993년까지 108년 동안에 걸쳐 건축되었다. 성당 첨탑의 높이는 92m로, 마드리드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성당 내부에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인 "성모 승천"이 있다. 현재 이 성당은 스페인의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겸하고 있다. 

 

우리가 프라다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에 누군가 결혼식을 하고 나오는데 남녀 모두가 예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해 보였다. 깔끔한 정장, 옷에 맞추어 신은 구두 손에든 핸드백은 한마디로 모두가 모델 같았고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보였다.

 

▲ 결혼식을 축하하고 나오는 남녀 모두가 예복을 너무 잘 차려 입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해 보였다.     © 경기데일리

 

▲ 프라다 미술관 바로 위쪽에 있는 마드리드 알무데나 대성당(Catedral de la Almudena)     © 경기데일리

 

프라다 미술관에 4시 55분 전쯤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우리가 입장할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프라다 미술관 정문 앞에 있는 고야의 흉상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고야의 흉상은 스페인 조각가 안토니오 로페스 갈레테가 1993년에 제작했다. 이 흉상은 고야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3.5m다. 흉상은 고야의 특징적인 긴 코와 턱수염, 그리고 의상과 모자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 스페인 조각가 안토니오 로페스 갈레테가 1993년에 제작한 고야의 흉상     © 경기데일리

 

그 흉상 아래 아프로디테의 나체 조각상이 고야의 흉상을 받치고 있다. 이 역시 고야의 흉상을 제작했던 스페인 조각가 안토니오 로페스 갈레테의 작품이다. 이 조각상은 고야의 작품인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2.5m다. 조각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거품 속에서 탄생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조각상은 프라다 미술관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고야의 흉상은 고야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며, 고야의 작품 세계를 미술관 밖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나체 조각상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프라다 미술관 정문을 바라다보면 오른쪽에 그림을 그려 파는 상인이 있다. 한 점이 60호쯤으로 보이는 그림이 90유로에서 180유로까지 가격이 붙어 있었다. 이곳을 서성거리다 보니 우리의 입장 시간이 되었다. 계단을 올라 입장하는 곳이 2층이고, 바로 고야의 그림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 고야의 흉상 아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나체 조각상이 고야의 흉상을 받치고 있다.     © 경기데일리

 

솔직히 말해 나는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다. 따라서 그 곳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하녀들”, 그리고  엘 그레코 작품을 비롯한 프란시스코 고야의 “검은 그림들”, “최후의 세족도”“옷을 입은 마야 와 옷을 벗은 마야를 비롯한 "1808년 5월 2일" 등 수십 편의 그림 중 2편에 대해서만 사회과학자의 관점에서 농협 임원이 명화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해 보겠다.

 

 왜냐하면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스페인 왕실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되었으며,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회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7,600여 점이나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그림들에 대한 언급은 내 능력 밖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우리 일행에게 설명해 준 그림이 프란시스코 고야의 <최후의 세족도>다. 이 그림은 1808년에서 1812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강렬한 메시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고야의 대표작 중 하나의 작품이다.

 

▲ 프란시스코 고야의 <최후의 세족도>     © 경기데일리

 

고야는 이 작품에서 예수와 제자들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예수의 수염과 피부, 제자들의 얼굴 표정과 옷차림까지 세밀하게 표현하여 주어서 그림을 보면서도 내가 마치 그곳에서 실제의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고야는 이 작품에서 강렬한 명암 대비를 사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예수와 제자들의 밝은 얼굴과 어두운 배경의 대비는 작품에 긴장감과 생동감까지 더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풍자와 비판을 잊지 않았다.

 

고야는 이 작품에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예수의 발을 씻는 제자의 모습은 교회의 위선과 타락을 상징하고도 남았다. 더 나아가 작품의 배경에는 교황과 성직자들이 술과 여자에 빠져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 명화를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교훈은  첫째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곳이어야 하지만, 이 작품에서 교황과 성직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어기고 부패와 타락에 빠져 있다. 고야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 이유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고발하는 고야의 메시지요, 교훈으로 다가 왔다. 둘째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다.

 

제자들의 모습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고도 남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 주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배신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는가? 이는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감을 보여주는 고야의 통찰이다. 셋째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수의 사랑을 강조하려는 고야의 의도가 아니던가?

 

<최후의 세족도>는 고야의 뛰어난 예술성과 사회 비판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한 점 더 소개한다면 옷을 벗은 마야(미인이라는 뜻 이외에도 마야'는 스페인어로 풍만하고 요염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와 옷을 입은 마야다.

 

▲ 옷을 벗은 마야'     © 경기데일리

 

'마야'는 스페인어로 풍만하고 요염한 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야는 '옷을 벗은 마야'뿐만 아니라 '옷을 입은 마야'도 고도이에게 그려줬다. 고도이는 누드 미술품을 모아 놓은 방이 따로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옷을 벗은 마야'를 걸고 그 앞에 도르래로 '옷을 입은 마야'를 설치해 움직이며 두 그림을 감상했다는 설도 있다.

 

고야의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도 첫 번째가 모델의 정체가 누구인가다. 후에 두 그림의 모델은 알바공작 부인인 카이에타나 (Cayetana) 또는 그의 연인 페피타 츠도우라고 추측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이름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이다. 오직 고야만 알 뿐이다. 다만 그림 속 모델은 궁정화가였던 고야의 애인이자, 스페인 재상의 정부였다는 추측뿐이다. 고야는 그녀를 위해 두 그림을 그렸으며, 두 그림은 고야와 마리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종교적 논란이다.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은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서는 누드화가 종교적, 도덕적 금기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 때문에 고야는 종교재판에 회부되기도 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 옷을 입은 마야     © 경기데일리

 

셋째가 소장자의 의도다.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의 소장자인 스페인 재상 고도이는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놓고, 손님들에게 보여주었다. 고도이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부, 그리고 여성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과시하고자 했다.

 

넷째가 전쟁의 피해다. 1808년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으로 인해,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은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그림은 프랑스로 옮겨져, 나폴레옹의 누이인 카롤린 보나파르트의 저택에 걸려 있었는데 1814년 프랑스군이 스페인에서 철수하면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다섯째가 현대의 해석이다. 오늘날 옷을 벗은 마야 그림은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림 속의 마야는 당당한 자세로 누워 있으며, 자기 육체를 성기의 체모까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가져야 했던 순결함과 도덕성이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점 때문에 고야는 선구자며 여성해방론자로 여성 해방을 이라는 메시지를 277년 전에 우리에게 보냈다.

 

그렇다면 우리 농협 임원들은 프라다 미술관의 명화를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그들과 동행은 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모른다. 다만 아래와 같은 식견이나 관점으로 그들의 지식구조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첫째 예술적 감각과 식견이다.

고야의 <최후의 세족도> 나 <옷을 벗은 마야 또는 옷을 입은 마야>라는 명화처럼 예술가의 깊은 통찰력과 창의성이 담겨 있는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예술적 감각과 식견을 함양할 수 있다. 이는 농협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다.

명화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농협이 고객과 사회와의 소통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프라다 미술관 입출구 청년 청년과 노인 조각   피카소작 한국에서의 학살   © 경기데일리
▲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두손 올린 힌옷 소년,  '미멜루크족의 진격' 1814년  © 경기데일리

 

셋째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다.

명화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농협이 새로운 사업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농협은 농업과 자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이다.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이는 농협이 자연을 보전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내면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농협은 농민과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는 농협이 고객과 사회에 더욱 큰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협은 미래지향적인 기업으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농협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농협 임원이 명화를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관광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농협의 경영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로써 마드리드의 프라다 미술관을 약 2시간 20분에 걸쳐 살펴보고 전시실을 나오자, 왼쪽에는 노인과 청년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콜럼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신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한 지 531년 기념 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기념 영상물   © 경기데일리

 

 콜럼버스는 1492년 10월 12일, 오늘날의 바하마에 도착하여 신대륙을 발견했다. 따라서 2023년 10월 12일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531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바로 앞쪽에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 프라다 미술관에 소장된 명화나 조각의 해설서였다.

 

이로써 우리는 마드리드 투어를 여기서 마무리하고 10월 13일인 바로 내일 8시 30분에 마드리드의 똘레도로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여정에 대비하기 위하여 서둘러 만찬 후 저녁 9시경에 돌아왔다.

뒤로가기 홈으로
광고

인기뉴스

광고
광고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경기데일리. All rights reserved.